
한국 드라마 포맷은 1990년대의 20부작 중심기에서 출발해 2000~2010년대 미니시리즈 전성기를 거쳐, 2019년 이후 시즌제와 파트 공개, 전편 일괄 공개까지 도달했습니다. 본 글은 20부작·미니·시즌의 기획·연출·비즈니스 차이를 짚어 포맷별 강점과 한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20부작: 지상파 황금기의 표준 길이, 본방 사수와 ‘큰 호흡’의 미학
20부작은 90년대 지상파 드라마의 사실상 표준 포맷이었습니다. 주 2회 편성에서 약 10주간 달리는 구조로, 대중이 “본방 사수”라는 리추얼을 통해 감정선을 주 단위로 축적하도록 설계됐죠. 이 길이의 핵심 경쟁력은 ‘큰 호흡’입니다. 초반 1~4회에 세계관과 인물군을 넓게 까는 대신, 중반(5~14회)엔 사건의 가지를 최대화하고, 후반(15~20회)엔 매듭·화해·상실·성장을 단계적으로 정리합니다. 멜로·가족극·정통 사극이 이 포맷과 특히 잘 맞았습니다. 멜로는 오해-갈등-이별-재회라는 감정 주기를 넉넉히 굴리고, 가족극은 세대·경제·가치의 축을 다층적으로 쌓을 수 있었으며, 사극은 정치·전쟁·외교의 라인을 교차 편집해 장중함을 확보했죠. 연출적으로는 세트 중심 멀티캠, 소프트 포커스, 크로스 디졸브, 슬로모션이 감정 과잉을 붙잡는 데 유리했고, OST는 메인·러브·서브 테마를 고정해 시청자의 기억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비즈니스 면에서 20부작은 광고 단가·PPL 투입·홍보 스케줄이 예측 가능해 방송사 편성의 ‘안정 자산’이었고, 장기 호흡 덕에 브랜드 친숙도도 높아졌습니다. 다만 약점도 분명했습니다. 촬영·방송 동시 진행(Live-shoot) 관행은 후반부 품질 편차, 작가·스태프 노동 강도, 리스크 관리 부족으로 이어지기 쉬웠고, 서브플롯 비대화·중반부 정체라는 고질병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20부작은 “회차가 쌓일수록 맛이 나는” 한국적 정서극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긴 러닝에서만 가능한 대사 리듬과 가정/직장/지역의 생활 디테일 축적, 명대사·명장면의 축적이 이후 케이블과 OTT 시대에도 여전히 레거시로 남아 서사의 품을 넓히는 기준점이 되었죠. 즉, 20부작은 시청률 중심 생태계의 합리적 타협이자, ‘대중의 주말 저녁’이라는 공동 감상의 시간을 설계한 포맷이었습니다.
미니: 8~16부의 타이트함, 스타·OST·클리프행어가 이끄는 대중성의 엔진
미니시리즈는 2000~2010년대를 관통한 ‘포맷의 왕’이었습니다. 8~16부(전통적으로는 16부) 체계는 20부작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중반부 느슨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해법이었죠. 기획 단계에서 에피소드 목적이 명확히 정의됩니다. 1~2회 강력한 훅(사건/설정/관계), 3~4회 신뢰 형성, 5~8회 첫 반전과 중간보스, 9~12회 재정렬·역주행, 13~16회 최종 국면·카타르시스가 교과서처럼 자리 잡습니다. 장르 측면에서 미니는 멜로/로코·직장·의학·법정·미스터리·청춘 등 ‘보편 장르+시대 정서’를 결합해 대중성을 최대화했습니다. 스타 캐스팅과 OST가 미니의 추진력을 크게 늘렸습니다. 톱스타×신예의 조합은 시청률과 화제성의 동시 달성을 노리는 정석 카드였고, 주제가는 캐릭터 감정과 1:1로 결합해 ‘OST=기억’ 공식을 강화합니다. 연출은 소프트 포커스·로우 콘트라스트·야경·한강·비·창가·버스정류장 등 아이코닉 오브제를 반복해 정서를 확장했고, 엔딩 클리프행어는 매회 소셜 대화를 촉발하는 장치로 정착했습니다. 비즈니스적으로 미니는 광고 단가를 끌어올리고, 패션·뷰티·F&B·모빌리티·통신 PPL을 서사 친화형으로 녹여 상업성과 리얼리티를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단점은 명확합니다. 16부를 고정으로 끼워 맞추다 보면 후반부 늘어짐이나 작위적 갈등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 있고, 주 2회 리듬이 글로벌 시청자의 정주행 관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점차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미니는 ‘대중성×콘셉트×속도’의 황금비를 제시하며, 케이블 시대의 톤앤매너(브랜드화된 연출·대사 리듬·직업성 디테일)와 OTT 시대 장르 혼합의 직계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컨대 미니는 한 시즌 한 호흡의 쾌감을 극대화한 포맷으로, 지금도 로코·휴먼·미스터리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기본형입니다.
시즌: 데이터·세계관·IP의 시대, 6~8부 타이트 구성과 파트 공개 전략
2019년 이후 OTT 확산과 함께 시즌제는 한국 드라마의 새 표준으로 부상했습니다. 이 포맷의 핵심은 ‘데이터와 동시성’입니다. 평가 지표가 시청률에서 완주율·체류시간·에피소드 드롭 지점·구독 전환/유지로 이동하면서, 각 화는 명확한 미션과 엔딩 리프트(다음 화 재생 전환)를 설계합니다. 6~8부의 타이트 구성은 제작 리스크를 낮추고, 장르적 완성도를 끌어올리며, 후속 시즌과 스핀오프·프리퀄을 염두에 둔 세계관 설계를 가능케 합니다. 공개 방식도 변수입니다. 전편 일괄 공개는 정주행과 구독 유지에 유리하고, 주차 공개/파트 분할은 장기 화제성과 커뮤니티 토론, 미디어 파이프라인(리캡/해설/인터뷰/메이킹)을 최적화합니다. 장르 면에서 시즌은 범죄 스릴러·복수극·청소년물·다크 코미디·크리처·오컬트 등 ‘고밀도 장르’를 주도하고, 로코·휴먼 역시 앙상블 캐릭터와 직업성 디테일, 생활 세계관 확장으로 경쟁력을 얻습니다. 운영 관점에서 쇼러너 지향의 작가 룸, 개발 셀(스토리 에디터+데이터 애널리스트), 사전 VFX/사운드/컬러 컨설팅이 표준화되며, 톤앤매너가 초기부터 고정됩니다. 현지화·번역 전략 역시 중요합니다. 다국어 자막/더빙의 리듬·유머·은유 번역, 썸네일·키아트의 지역별 A/B 테스트, 민감한 주제(젠더·장애·종교·이민)의 가이드라인 준수가 글로벌 완주율에 직결됩니다. 수익 구조는 플랫폼 머니+지역 판권+IP 파생(굿즈·전시·체험·OST)+FAST/AVOD로 다층화되고, KPI는 재진입률·검색량·소셜 임프레션·커뮤니티 UV까지 확장됩니다. 리스크 역시 빠르게 관리됩니다. ‘파일럿 없는 기획’ 환경에서 시즌1의 성과가 즉시 갱신/중단으로 이어져 성공과 실패의 속도가 모두 빨라졌죠. 그만큼 시즌제는 초반 10분의 흡입, 3화의 전환, 최종 엔딩의 잔여 떡밥 설계가 생존 전략입니다. 결론적으로 시즌 포맷은 한국 드라마를 글로벌 표준의 속도·품질·데이터 문법에 정렬시키며, 장기 IP 포트폴리오 구축의 핵심 체계로 자리잡았습니다.
정리하면 20부작은 ‘큰 호흡과 공동 시청’의 미학, 미니는 ‘대중성·스타·OST’의 엔진, 시즌은 ‘데이터·세계관·IP’의 전략입니다. 기획 중인 작품의 목표 시청자·장르·예산을 알려주시면 포맷 추천, 회차별 아웃라인, 공개 전략과 KPI 설계까지 한 번에 제안드리겠습니다.